-사람을 가르는 허울뿐인 자유를 위한 내부 식민지로써 도시가 아니라, 인권과 생명, 평화가 살아 숨쉬는 사람의 도시 퀴어자유도시-
우리는 1년 전 제주퀴어문화축제를 방해하는 폭력과 가짜 뉴스에 시달렸습니다. 혐오세력은 축제 집회신고를 막으려 했고, 전날 공원을 점거하려 했습니다. 당일에는 축제 참가자들이 화장실 출입도 어렵도록 애워쌌고, 행진 시작을 막아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행진을 시작한 후에는 트럭 밑에 들어가서는 트럭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사람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가짜 뉴스를 퍼트려 선동했습니다.
그해 그런 폭력은 제주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대구에서는 혐오세력이 사람들이 오도가도 못하게 길을 막았습니다. 서울에서는 큰 음량으로 축제를 방해했습니다. 부산에서는 같은 장소에 무대를 설치해서 축제를 방해했습니다. 인천에서는 혐오세력이 광장을 점거하고 폭력과 폭언으로 참가자를 위협했고, 깃대와 깃발을 빼앗고 부수었습니다. 행진을 마친 후에도 폭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광주에서는 혐오세력이 폭언 뿐 아니라, 행진 중간 중간 밀어붙여 위협받았고, 그 장소를 떠날 때도 경찰의 호위를 받아야 했을 정도로 위협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명보다 자본이 우선인, 평화와 인권보다 혐오의 자유가 우선인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왔던 땅, 우리가 사는 땅에서 혐오와 폭력에 시달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뒤집어 자본보다 생명이 우선인, 혐오 대신 평화와 인권이 우선인, 누구도 위협받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땅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깃발을 들고 축제를 합니다.
우리는 그 폭력 속에서도 깃발을 세우고, 서로의 존재를 축복하며 축제를 만들고 즐겼습니다. 서로가 살아있음을 기뻐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소망하며 축제를 즐겼습니다. 또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내용의 깃발을 들고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는 외침과 함께 서로의 자긍심을 끌어올리는 아름다운 거리 행진을 했습니다.
올해 제3회 제주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퀴어자유도시>입니다. 국제자유도시라는 이름으로 자유롭게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람이 아닌 자본과 개발만 자유롭습니다. 관광도시라는 이름으로 볼 거리를 풍부하게 할 것 같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 대신 자연을 파괴하는 공사와 자연 경관을 독점하는 자본만 자유롭습니다. 청정제주라고 하지만, 제주의 청정자연을 파괴하는 데만 힘씁니다. 이렇듯 성소수자를 둘러싼 현상들은 제주가 지닌 역사, 환경, 평화, 노동 문제와 닮아 있습니다.
성소수자가 여기 저기서 지워지며 억압 받는 모습은 제주의 여기 저기서 일어나는 모습과 매우 유사합니다. 강정에서는 관함식이 있었고, 화해와 통합을 내세우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면서, 반대 주민들은 공권력을 통해 막았습니다. 성산에는 제2공항을 만든다며 주민들을 계속 가르며, 반대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주민들을 막는 주민공청회를 한다거나 기만적으로 세종시에서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공공기관은 상시 업무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임금을 차등했습니다. 영리 병원을 허가하여 보건의료를 보편적 권리가 아닌 자본이 활개칠 영역으로 넓히려 했습니다. JDC는 제주를 사랑하는 척하며, 여전히 제주를 식민지배하는 기관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하수처리가 어려운 상황에도, 자연이 파괴되고 살던 사람이 쫓겨나는 데도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는 방관하거나 무력한 모습만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시당하고 배제된 제주인의 모습에서 이렇게 성소수자 혐오를 통해 세력을 결집하고 권력을 탐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주의 성소수자는 배제당하고 지워진 그 제주의 시민의 모습이기도 하고, 땅과 집을 빼앗겨 쫓겨나는 철거민의 모습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문화가 전시당하기만 하는 이주민과 난민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비슷한 면이 많은 배제당해온 당사자입니다.
우리는 허울 좋은 <국제자유도시> 제주를 풍자하며 동시에 지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소수자로 인식되고 호명되어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존재가 아닌 다양성을 이루는 한 존재로 안전하게 스스로를 드러내며 살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또한 성소수자 억압과 비슷한 궤적을 보이는 제주의 난개발을 규탄하고,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가시화를 통해 시민사회 운동의 연대를 확장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퀴어자유도시라는 슬로건을 실현하는 축제를 통해 살아내고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평화의 섬, 자연과 공존하는 청정 제주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과 함께 오시길 바랍니다. 함께 하는 이의 손을 잡고, 친구의 손을 잡고, 동지의 손을 잡고 축제에 오세요. 우리는 연결될 수록 강하고, 함께 하는 이들을 볼 수록 힘이 납니다. 우리가 꿈꾸는 내가 어떤 모습이든 그 모습 그대로 행복할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을 이 축제를 통해 함께 제안하고, 제시합시다.
축제는 주최자만이 만들지 않습니다. 축제를 완성하는 것은 참가자와 축제를 받아들이는 제주 사회입니다. 함께 평등과 평화, 인권을 이야기하고, 혐오와 차별에 저항합시다. 9월 7일 토요일 신산공원에서 함께 인간이 자유로운 도시, 소수자가 억압받지 않는 도시의 모습을 함께 만들어봅시다.
2019년 8월 9일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